인간의 변화하는 면과 변화하지 않는 면을 적절히 배치하여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조직화다.

 

천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조기 교육이 중요하죠. 변하지 않을 것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고귀한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권리인 교육의 권리를 모든 사람이 타고나지는 않습니다. 환경 역시 천성이라고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정말이지 슬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서로 다릅니다. 타고난 천성 혹은 환경도 다르고, 의지가 추구해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며, 개인의 잠재 능력 역시 다릅니다. 때문에 인간은 놀라운 존재입니다. 교육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변화시킬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인간이 쌓아온 이성의 역사는 그것을 적절히 배치하고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왔고, 다행히도, 그것은 상당한 잠재능력 (집단으로서든 개인으로서든)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적어도 저는) 조직화라고 부릅니다.

 

11명의 축구 선수가 필드에서 달리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상대편 및 심판까지 포함하여 모두 23명의 축구인이 필드에서 제 각기 역할을 하고 있죠. 일종의 공연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겁니다. 그 중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달리기가 빠른 선수가 있고, 발 재간이 좋은 선수가 있습니다. 체격이 좋은 선수가 있고, 공간을 잘 찾아내는 선수가 있습니다. 감독은 각각의 선수들을 적재 적소에 배치시킵니다.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배치되며, 최적의 장소에 배치 되었을 때, 선수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기쁨이 됩니다.

 

우연의 힘은 존재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태어나는 것 역시 우연이며, 그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여,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도 대부분 우연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조직화는 우연의 힘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화는 우연을 기회로 만들기 위한 준비입니다. 조직화가 의미하는 것은 최적의 컨디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골을 넣는 것은 1명이지만, 우승 트로피는 팀이 받습니다. 그리고 그 최고의 보상. 만족감과 즐거움은 관련된 모두가 공유합니다 (심지어 돈을 내고 티켓을 구입한 관객 까지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그들도 조직화의 일부라는 의미 아닐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매너리즘은 조직화의 부작용입니다. 안정화를 찾아 가는 것은 물질의 성질이죠. 부패하는 것도 유기물의 생리입니다. 그러나 태양의 에너지를 통해 물이 순환하여, 자연은 물 그 자체가 부패하도록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물이 계속해서 새로운 것으로 변화합니다. 그 정반대의 과정이 바로 매너리즘입니다. 문제가 표면에 올라오는 계기는 많은 경우 조직화 자체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개개인에게 있습니다. 때문에 매너리즘을 피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조직이 모두 움직여야 합니다.

 

조직은 궁극적인 (여기서 궁극적이라는 것은 영원할 수 있는 것[조직이 존재하는 한] 을 의미합니다)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한 작은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개개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개인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워야 하며, 스스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목표와 소소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방법입니다. 앞으로 가는 것은 최선이고, 그 다음은 뒤로 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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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en Strangles Father with Gamepad Cable

18세 청소년이 자신의 아버지를 비디오 게임 패드 케이블로 교살한 후 체포되었다. 비디오 게임 콘솔의 이름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은 가운데, 경찰은 거의 비현실적인 (그러나 이상하게 이해할만한) 살인 시도로 연결된 상황을 입증할 수 있었다.

경찰의 진술에 의하면, 그 십대는 사건이 일어날 당시 게임와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게임을 그만하도록 이미 여러번 경고한 아버지는 방에 들어와서 비디오 게임을 끄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끝까지 게임을 했다. 아들의 반응에 화가난 가장은 전원 케이블을 뽑아, 아들이 게임을 더이상 진행 하지 못하게 했다.

게임 성과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에 격노한 아들은 소파에서 뛰어 나와 자신의 아버지를 게임 패드의 케이블로 목조르기 시작했고, 아버지를 거의 죽음 가까이 몰아갔다. 다행히도, 남편이 몸부림치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아내가 들었다. 그 다음 경찰과 긴급 의료팀이 도착했고, 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몇 분 후 경찰은 이번 빌바오 거리(주초 사건이 있었던 스페인 도시) 근처에서 아들을 체포했다.

아들은 현재 양육권리 아래에 있으며, 가정 폭력 범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금 나는 그의 행동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사실 가끔 나도 게임이나 문서 작업이 수포로 돌아가는 그런 이유 때문에 누군가를 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받는다. 그것이 누군가가 전원 케이블을 넘어가다 그랬건, 보통의 전기 사고이건 상관 없지만, 게임 패드나 마우스를 벽에 던지는 것 이상 화를 낸다. 당신은 어떠한가?


http://gizmodo.com/343186/teen-strangles-father-with-gamepad-cable


흠.. 여기까지가 블로그 내용입니다. 뭐라 할 말은 없군요... 부모님을 공격하는 이유가 조금씩 더 다양해 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이 글을 쓴 기즈모도의 블로거의 말 중... 게임이나 문서 작업이 수포로 돌아갈 때 누군가를 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받는다는 말도 참 씁쓸하게 만드네요. 도데체 무엇이 누군가를 친것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지... 그것이 이해되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지 않군요. 그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걸까요. 설령 그것이 삶의 전부라 하더라도, 분노가 그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게 할까요.
그냥..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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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everybody in this world can see a doctor when in need. This is even more so in area's where people suffer from famine, war and diseases. Doctors of the world aims to provide everybody in this world with at least the most essential the medical care. Help the people the world is slowly forgetting.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필요할 때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기근, 전쟁 그리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곳일 수록 더합니다. 세상 의사들의 목적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필수적인(기본적인 이란 의미겠죠) 의학적 치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서서히 잊혀져갑니다. (??? 마지막 문장은 확신이 안서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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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란 무엇인가?
예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변화란 창조를 의미한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변화란 혁명을 의미한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변화란 발전을 의미한다.
제도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변화란 이탈을 의미한다.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변화’란 이 네 가지 모두를 의미한다. 각각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변화’라는 개체의 일부로써, 함께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변화의 필요
‘변화의 이유’란 타동성을 띄지만, ‘변화의 필요’는 자동성을 띄기 때문에, ‘필요’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우리 몸은 그렇게 만들어 졌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대치되고, 순환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용이 멈춘 것을 과학적, 의학적 관점에서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죽음을 연기’하기 위한 작용이 아니라, ‘삶을 연장’하기 위한 작용이다. 이 차이는 매우 큰 것이다. 후자의 경우 즐거움이 관련되어지기 때문이다. 목적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과정을 위한 과정이 더 즐거움을 만든다.
새로운 시도는 예술을 연장 시키고, 동시에 예술가를 즐겁게 만든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새로운 시도란 박물관에서 한 칸이 더 늘어나는 것 뿐이다. 이것은 예술의 죽음을 연기 하는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예술의 수명에 비해 삶은 너무도 짧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한 변화의 조건
어떤 의미에서든 변화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식과 행동은 서로 다른 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연동하지 못한다. 말은 머리에서 나오지만, 행동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화를 위한 첫 번째 단계를 ‘변화를 위한 변화’라고 명명하고 그 조건을 나열했다.

변화란 경주와 같다. 그러나 그 경주는 삶이라는 긴 경주만큼 길지 않다. 짧고 넓은 트랙도 있고, 좁고 긴 트랙도 있다. 변화를 위한 변화는 그러한 트랙을 능숙하게 달리는 사람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그 트랙이 어떤 형태를 지녔건 상관 없이 말이다.
 

 용기 - 출발선 상에 서기 위한 용기
경주의 첫 단계는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출발선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어떤 트랙은 목적지가 눈에 보이지만 어떤 트랙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고, 달리고 있다는 그 자체이다.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용기를 내어 출발선에 서자.
  
 두려움 - 출발 선상에 있다는 것의 책임을 아는 것
출발선에 서는 용기를 내지만, 그 책임을 알지 못하는 용기는 만용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의 ‘시작’이라는 단어는 출발선에 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모든 출발선에서의 목표 의식을 갖게 해준다.

 관용 - 함께 달리는 법을 배우는 것
출발선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모두가 함께 출발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달리지도 않는다.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달릴 수 없다. 나보다 앞선 사람도 존중하고, 나보다 뒤쳐진 사람도 존중하는 것은 자신의 경주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인내 - 혼자 달리는 법을 배우는 것
어떤 경주는 온 몸이 부서지도록 길다. 경주가 길어지면, 각각의 개인차는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외로운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된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며, 한편으로는 질책하면서도 합리화 시키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그 어떤 경주에서도 오래 달리지 못한다.

 자중심 - 나의 것을 지킬 줄 아는 것.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 시킨다. 변할 것 같지 않던 다짐과 의지도 변하기 마련이다. 시간에 역하여 이것을 지켜내야만 한다. 자신의 다짐을 조금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갈대는 휘어지지만, 꺽이지 않는다. 장애물을 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결승점에 다다르는 것이 목적이다. 장애물은 넘어도 되지만, 피해도 된다. 돌아가도 된다.

 겸손 - 나의 것을 버릴 줄 아는 것
아무것도 버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면, 결국 그것이 내 목을 조르고,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이전의 경주에서 나를 우승하도록 도운 장대높이 뛰기용 장대는 100m 달리기를 우승하도록 돕지 않는다. 버리는 것의 기준은 주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가치 평가는 필요성에 의해 좌우 되어야 한다.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바다가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은 부패되지 않는다. 변화는 지금 당장은 혼돈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삶은 계란을 돌리면서 노른자가 가운데에 정착되어 먹음직스럽게 되듯이, 이것은 삶을 즐겁게 만들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며, 고리타분하거나,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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